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스스로 하려는 욕구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자율성이 ‘떼쓰기’, ‘고집’처럼 보이기도 해 부모와 교사 모두 혼란스럽기 마련입니다. 이런 시기를 이해하고 적절히 지원하기 위해서는 심리발달 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중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이론은 유아기의 자율성 발달을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이 참고되는 이론입니다. 이 글에서는 에릭슨의 ‘자율성 대 수치심 및 의심’ 단계를 중심으로, 자율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일상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자율성과 수치심의 갈림길: 에릭슨 이론의 핵심
에릭슨(Erik Erikson)은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을 총 8단계로 구분했으며, 각 단계마다 인간이 직면하는 주요 발달 과업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유아기에 해당하는 두 번째 단계가 바로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입니다. 이 단계는 대략 만 1세 반에서 3세까지의 시기를 의미하며,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선택하려는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내가 할래’, ‘혼자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자주 하며, 식사, 옷 입기, 물건 정리 등 일상에서 스스로 해보려는 시도를 반복합니다. 이때 부모나 교사가 지속적으로 간섭하거나 ‘아직 어려’, ‘그건 엄마가 해줄게’라는 방식으로 아이의 시도를 차단하면 아이는 점차 ‘나는 못하는 존재야’라는 수치심과 자기 의심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에릭슨은 이 시기를 긍정적으로 통과할 경우 자율성과 자기 조절력, 실패를 경험했을 경우 수치심, 회피, 의존성이 강화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아이의 자율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사회성, 자기 효능감, 문제 해결 능력 등 핵심 역량이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일상 속 자율성 발달을 위한 실천 방법
이론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안정적인 틀 안에서 시도할 수 있도록 일상 구조 속 실천 전략이 필요합니다.
첫째,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 구성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옷장을 낮게 설치해 아이가 스스로 옷을 고르게 하거나, 정리정돈 도구를 아이 눈높이에 맞게 배치하는 등 환경 구조화를 통해 선택권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경이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으면 말로 아무리 허락해도 실천이 어렵습니다.
둘째, 실수에 대한 포용적 태도가 자율성 발달의 핵심입니다. 아이는 시도 속에서 당연히 실수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또 흘렸잖아”, “봐, 그래서 하지 말랬지” 같은 반응은 아이의 의욕을 꺾는 주요 요인입니다. 반면, “다시 해보면 될 거야”, “실수는 누구나 해” 같은 언어는 아이에게 실패를 통해 배우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셋째, 선택의 기회를 자주 제공해야 합니다. 단, 모든 상황에서 완전한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선택 안에서 스스로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예: “지금 양말 신고 나갈 거야. 파란색이랑 노란색 중에 뭐 신을래?” 아이는 이렇게 통제된 자율성을 통해 스스로 결정했다는 경험을 쌓아갑니다.
넷째, 자기 조절력을 키우는 작은 도전을 일상에 포함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장난감은 놀고 나서 제자리에 놓는 거야”처럼, 일정한 규칙과 그에 따른 실행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해 주세요. 이 과정에서 아이는 행동을 조절하고, 규칙을 지키며, 자연스럽게 자율성과 책임감을 배웁니다.
자율성과 애착, 훈육의 균형 잡기
아이의 자율성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율성은 안전한 애착 관계와 일관된 훈육 기준 안에서 더욱 건강하게 발달합니다.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기 전에 먼저 형성되어야 할 것은 기본적인 정서 안정입니다. 즉, 내가 도전해도, 실패해도, 좌절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어른이 있다는 안정감이 선행될 때 아이는 자율적 행동에 나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애착 관계는 자율성 발달의 기반이 됩니다. 또한 훈육의 기준은 일관되면서도 유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매일 다른 규칙을 적용하거나, 부모의 감정에 따라 반응이 바뀐다면 아이는 스스로 통제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안정적인 틀을 찾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반응은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자율성을 키우는 과정은 ‘따뜻한 허용’과 ‘분명한 경계’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아이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에 따른 결과도 함께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훈육이자 교육입니다.
결론: 자율성은 경험과 신뢰 속에서 자란다
에릭슨의 이론은 아이의 발달을 연령별로 단순히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 시기의 ‘도전’과 ‘해결’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유아기의 자율성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발달 목표지만, 동시에 그 이후의 자아정체감, 성취감, 대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핵심 자산입니다. 아이의 자율성은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아이가 선택하고 시도하고 실수하는 경험을 반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 과정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지원해주는 것, 이것이 아이의 건강한 자율성 발달을 위한 최고의 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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