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밭에서 자율주행 트랙터가 움직이고 드론이 방제 작업을 수행하는 광경이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AI와 로봇이 농업 현장에 빠르게 도입되면서 "농민은 필요 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농촌을 살릴 마지막 카드"라는 기대가 공존합니다. 농가 인구 200만 4천 명, 고령화율 55.8%라는 통계 속에서 AI·로봇 농업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생존 전략에 가까워 보입니다.
스마트팜과 자율주행 농기계의 현주소
2023년 말 기준 전체 시설원예 농가면적 약 5만 5천 ha 중 스마트온실 장비와 시설을 도입한 면적은 7,716ha로, 우리나라 스마트팜 면적은 약 14%에 달합니다. 스마트팜은 센서, 자동제어, 데이터 기반으로 온도, 습도, 양분, 관수를 관리하며, 노지에서 연간 4모작을 할 수 있는 상추를 최대 17모작까지 재배할 수 있게 합니다. 이는 단순한 효율 증대가 아니라 생산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혁신입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기술은 트랙터에 적용되어 카메라 영상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한 데이터와 GPS 위치 데이터를 연계해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운전자가 네 개 지점을 설정하면 최적의 작업 경로를 생성해 경운·정지 등 농작업을 수행하며 작업 시간을 25% 단축시킵니다. 2023년 농림축산식품 통계 기반으로 과수원에 무인 방제·제초 로봇 활용 시 농약 살포 비용과 인건비 등을 줄여 연간 3,306억 원을 절감하는 경제적 효과를 얻는다고 추정됩니다.
드론 방제, 파종, 관측 역시 인력과 시간을 크게 줄여주며, 농촌진흥청은 재배면적과 작황 파악을 위해 드론을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AI 기반 작황·병해충 예측, 생육 모니터링, 자동 선별·포장 시스템까지 이미 상당 부분에서 AI·로봇이 농사일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단계입니다. 경북 영주의 한 농민은 "두둑 만들기, 파종 작업을 야간에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야간 작업할 때 잘 안 보이고 피로도 증가했는데, 자율주행 트랙터로 밤에도 날씨가 좋지 않을 때도 정밀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농민은 "물이 찬 논에 로터리 작업을 하다 보면 흙탕물 때문에 선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율 작업 트랙터는 정확히 간격에 맞춰 작업을 한다"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도입은 '멋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없어서, 버틸 수 없어서 시작된 면이 큽니다. 기술이 농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고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하면서 농민이 더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영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농촌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의 구조적 압박
2024년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12월 1일 기준 전국 농가는 97만 4천 가구, 농가 인구는 200만 4천 명으로 전년 대비 각각 2만 5천 가구, 8만 5천 명 감소했습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55.8%로 전년보다 3.2%포인트 상승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70세 이상이 전체 농가 인구의 39.2%로 가장 많고, 60대가 30.5%, 50대가 14.0%를 차지합니다.
농가 인구는 2000년 231만 4천 명에서 연평균 -2.9% 감소해 2024년 200만 4천 명이 됐으며, 고령 인구는 연평균 2.6%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고령 인구 비율이 19.2%인 점을 고려하면 농촌의 경우가 2.9배 높습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며, 특히 모내기, 수확, 방제 같은 피크 노동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폭염, 한파, 장시간 노동, 농기계 사고, 농약 노출 등 신체적 부담과 위험도 문제입니다.
규모화와 전문화도 기술 도입의 주요 동인입니다. 규모가 커진 농가, 법인, 스마트팜, 시설 재배에서 "사람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작업량"이 등장했습니다. 반복, 단순, 위험 작업부터 자동화 압력이 커지고 있으며, 논밭 다니며 약 치기, 무거운 상자 나르기 같은 동작 반복 수확·선별 등이 대표적입니다. 파트타임, 일용직, 외국인 노동 의존도가 높은 영역부터 자동화 압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스마트팜 농가의 품목별 자가 노동 시간을 보면 실제로 감소했습니다. 생산성은 향상되지만 투입 노동력은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이는 AI·로봇이 특히 '단순·위험 노동'부터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과정에서 기존 일자리 구조가 바뀌는 건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령 농민과 소규모 농가에게는 노동력을 보완해 적은 가족 인원으로도 면적을 유지하게 해주는 보조 수단이 되고, 청년 농부, 귀농, 로컬 창업에게는 "농업+기술+콘텐츠+서비스"를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 기회가 됩니다. 스마트팜 투어, 데이터 농업 컨설팅, 로봇 운영·정비 같은 새로운 직무도 등장할 것입니다.
기술 격차와 플랫폼 종속의 위험성
비용과 자본 문제는 AI·로봇 농업의 가장 큰 진입 장벽입니다. 초기 투자비가 크며 소규모 고령 농가일수록 접근이 어렵습니다. 국내 주요 시설원예농가의 스마트팜 도입률은 1.5%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있어, 비용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격차도 존재합니다. 시스템 이해 운영 능력 차이가 있어 같은 기술을 두고도 활용 격차가 크게 벌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데이터와 플랫폼 종속 우려입니다. 장비, 소프트웨어, 데이터가 특정 기업 플랫폼에 종속될 경우 농가가 가격 정책에 끌려다니는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농민이 생산자는 되지만 통제권은 기업에 넘어가는 구조를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기술 그 자체보다 누가 접속할 수 있고 누가 통제권을 가지느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는 AI·로봇 농업이 일부 대농과 준비된 청년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고, 소규모 농가와 고령 농민을 더욱 주변화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그럼에도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2024년 192억 7천만 달러 이상이었으며, 2037년에는 901억 3천만 달러를 넘어 예측 기간 2025~2037년 동안 12.6% 이상의 CAGR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2021년 2.4억 달러에서 2025년에는 4.9억 달러로 매년 16%가량 늘어날 것으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전망했습니다. 2024년 자율 트랙터 산업 규모는 25억 2천만 달러로 평가됐으며, 시장은 2025년부터 2032년까지 CAGR 19.20%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 지원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2024년도 기준 정부 스마트 농업 관련 예산은 1,186억 원으로 2023년 1,096억 원 대비 8.2% 늘었습니다. 정부는 스마트팜 혁신밸리 4개소를 구축하고, 청년창업 보육센터를 지정하며 전문 교육 과정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스마트팜 수출이 2023년 약 2억 8천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약 3배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시장 성장과 정부 지원은 기술 접근성을 높이고 비용 문제를 완화할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기술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AI·로봇이 할 수 있는 것은 반복, 위험, 노동집약 작업, 데이터 처리와 예측, 대규모 시설 관리 지원입니다. 그러나 지역, 작물, 해마다 다른 변수 속에서 나오는 현장 경험, 마을, 직거래, 브랜딩, 관계 맺기, 농업과 마을을 운영하는 판단과 책임은 여전히 AI 로봇이 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결론
AI·로봇 농업은 농민을 통째로 대체하기보다 '어떤 농민은 밀어내고 어떤 농민은 살려주는 힘'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준비된 농민, 청년에게는 확장 카드가 되지만 준비 안 된 현장에는 더 큰 격차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농민과 마을을 중심에 두고 기술을 설계할 것인가'입니다. 농민이 데이터와 시스템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디지털 격차를 줄이며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AI·로봇 농업의 진정한 성공 조건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JpkBNCU_hUo